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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1.

    by. woosja

    목차

       

       

      『페스트』 알베르 카뮈
      페스트

      1. 도서 소개

      『페스트』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1947년작으로, 인류 역사상 반복되는 전염병이라는 익숙한 재난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의 도덕적 선택과 실존적 태도에 대해 깊이 천착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사회를 은유적으로 담아낸 이 소설은, 단순한 전염병의 확산과 그에 따른 공포의 기록을 넘어서, 인간이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카뮈의 철학을 문학적 형식으로 구현한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도시는 알제리의 해안가 도시 ‘오랑’이다. 이 도시는 마치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평범한 공간은 곧 극단적인 고립과 혼란의 상징이 된다. 이름 없는 쥐들의 시체가 거리마다 쌓이기 시작하고, 이윽고 주민들 사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과 림프선 부음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곧 드러나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끔찍한 전염병, 즉 ‘페스트’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이 전염병이 도시를 집어삼키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안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대응 방식과 감정, 선택이 세심하게 묘사된다. 카뮈는 의사 리외를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독자가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시선을 확보한다. 리외는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인간성을 모두 가진 인물로서, 독자에게 감정적 과잉이나 판단을 유도하기보다는, 스스로 사고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내면적 울림을 전달한다.

      『페스트』는 전염병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 ‘부조리’라는 철학적 개념을 구체화한다. 카뮈에게 있어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합리하고, 인간은 이 부조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 속에서도 자신만의 윤리적 선택과 실존의 태도를 확립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가장 존엄한 존재로 여겼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믿음의 문학적 구현이자, 모든 것이 무너질 때조차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다.

      놀랍게도 『페스트』는 21세기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강한 공감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로나19라는 현실의 팬데믹 속에서 이 책이 전 세계 서점 베스트셀러에 다시 오르며 주목받았던 이유는, 단순히 전염병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다. 혼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누군가의 생명을 위해 나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가? 연대란 무엇이며, 희망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카뮈는 이런 질문을 80년 전부터 던지고 있었고, 그 물음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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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줄거리


      이야기의 시작은 한 마디의 경고도 없이 찾아온다. 평온했던 알제리 해안 도시 오랑에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거리 곳곳에 죽은 쥐들이 넘쳐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불쾌감이나 혐오감 정도로 반응한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곧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열과 통증, 림프선이 부어오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이를 단순한 감기나 유행성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곧 이 증상이 ‘페스트’임을 직감하지만, 당국은 초기에는 이를 외면한다.

      병은 빠르게 번지고, 도시는 봉쇄된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오랑은 철저한 고립 상태로 들어선다. 전화도, 기차도, 편지도 막히고, 시민들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감염의 위협 속에 방치된다.
      이 혼란의 중심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리외다. 그는 의사로서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따라 감염자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리외의 ‘의학적 행위’가 아니라, 그가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느냐이다. 리외는 신을 믿지 않으며, 세상에 절대적인 정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친다. 이는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윤리’의 상징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타루는 자발적으로 방역단을 조직해 시민을 구하려 하고, 랑베르라는 외지 기자는 처음엔 도시를 탈출하려 하지만 결국 남아 돕기로 결심한다. 반대로 코타르는 전염병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며 사회의 붕괴를 즐긴다. 이 인물들은 모두 인간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본질을 드러내는지를 보여준다.

      병은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수많은 이들이 죽는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도 강제로 이별해야 하며,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생의 의미는 점점 흐려지고, 죽음은 일상이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 그건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리외처럼 이름 없는 사람들의 끈질긴 연대와 선택이다.

      결국 병은 물러난다. 예고 없이 찾아왔던 그 질병은,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도시를 떠난다. 오랑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리외는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잠복하며, 인간의 무방비한 순간을 기다린다.”

      이 말은 단순히 질병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도 무책임, 이기심, 무관심이라는 페스트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문명과 도덕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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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평가


      『페스트』는 오늘날의 팬데믹 시대를 예언하듯 담아낸 고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전염병 소설’로 머물지 않는 이유는, 카뮈가 질병을 통해 인간 자체를 해부했기 때문이다.

      카뮈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무력함 속에서도 책임을 다하는 사람, 자신의 생존만을 우선하는 사람, 처음엔 도망치려다 끝내 남은 사람. 이 다양한 반응은 독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그 도시 안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 질문은 한 번도 가볍지 않다.

      또한 카뮈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결코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절망을 직시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작게 속삭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도와주고,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문장도 눈부시다. 간결하면서도 깊고, 감정은 절제되어 있지만 여운은 길다. 그는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기보다는,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만든다. 이 점에서 『페스트』는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후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다시 꺼냈다. 놀랍도록 현실적이었고,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우리가 겪은 단절, 불안, 책임감, 그리고 연대까지 모두 이 책 안에 있었다. 카뮈는 시간을 넘어 오늘의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