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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1.

    by. woosja

    목차

       

      정유정의 『7년의 밤』
      7년의밤




      1. 도서 소개


      정유정. 이름만 들어도 독자들의 심장이 서늘해지는 작가다. 『7년의 밤』은 그녀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냉철한 시선과 극도의 감정선이 겹쳐지며 ‘정유정 월드’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과 죄, 복수,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리고 진정한 책임에 대해 묻는 심리문학에 가깝다. 정유정은 ‘괴물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축에 두고, 한밤중의 비극이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이어지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7년의 밤』의 배경은 세령호라는 외진 마을이다.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그곳은 고요하고 적막한 풍경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감춰진 갈등과 위선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 마을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 최현수와 오영제는 각각 죄와 복수의 주체이자 상징이 된다. 최현수는 우발적인 사고로 한 아이를 죽이게 된 남자이고, 오영제는 그 아이의 아버지로서 응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자이다.

      그러나 정유정은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이야기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은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단, 조건이 맞으면.”이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끊임없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책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오히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그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서원'이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의 그늘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한 아이. 작가는 그를 통해 죄는 유전되지 않지만, 죄의 흔적은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말하고 있다.

      2011년 출간된 이 작품은 2018년 류승룡, 장동건 주연으로 영화화되며 대중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았다. 그러나 책이 주는 무게감과 문장의 힘은 단연 독보적이다. 긴 호흡, 날카로운 묘사,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7년의 밤』은 단순히 읽는 소설이 아니라 ‘겪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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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줄거리


      한밤중, 세령호를 가로지르는 국도 위를 한 남자가 차를 몰고 있다. 그의 이름은 최현수. 전직 야구선수였지만 지금은 보안요원으로 살아가는 남자. 음주 상태였던 그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이내 한 아이를 치어버린다. 그 순간 그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뒤틀린다.

      아이를 치었다는 충격, 그리고 이미 파탄난 삶에 대한 절망이 뒤섞인 그는 결국 시신을 호수에 유기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 아이, 세령은 세령호 마을의 지배자인 오영제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오영제는 세령의 죽음을 즉시 감지한다. 그는 경찰이나 법보다도 먼저, 스스로 복수의 시나리오를 짠다. 그 복수의 방식은 대담하면서도 끈질기다. 그는 직접 최현수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아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서원’을 목표로 삼는다.

      최현수는 죄를 숨기고, 서원을 데리고 세령호를 떠난다. 이후로도 그는 쫓기듯 살아간다. 서원은 어릴 때 아버지가 했던 어떤 ‘큰 잘못’으로 인해 전학과 이사를 반복하며 외롭게 자라난다. 그의 삶에는 친구도, 희망도 없다. 오직 살아남는 법만 배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진실은 결국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서원은 스무 살이 되고, 자신의 삶을 지배해온 그 ‘7년의 밤’에 대해 직접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당시의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왜 그토록 도망쳐야만 했는지를 알아간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죄는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은 그림자가 되어 사람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결국 서원은 오영제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이야기는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과 용서받고 싶어 하는 인간들 사이의 무게 싸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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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평가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단연코 한국문학에서 손꼽히는 심리 스릴러이자, 죄와 복수,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응축된 걸작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은 사건이 아닌, 그 사건을 겪는 사람들의 감정과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최현수는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분명히 죄를 지었다. 그것도 되돌릴 수 없는 죄를. 하지만 그는 악인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약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그가 저지른 선택은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가 감정적으로 그를 전적으로 미워하기도 어렵다. 이는 정유정이 인물의 다면성을 얼마나 정교하게 그려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오영제는 그 반대다. 겉으로 보기에는 피해자이고, 딸을 잃은 아버지이지만, 그가 취한 방식은 또 다른 폭력이다. 그는 자기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복수라는 이름의 파괴를 택한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증오하던 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괴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두 남자의 대립 사이에서 가장 깊은 감정을 끌어낸 인물은 서원이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숨고, 도망치며 자라난 그는 언제나 사회의 경계에 서 있었고, 결국 자신의 존재마저 죄처럼 여기게 된다.

      정유정은 이 아이의 시선을 통해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죄의 후손’을 대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이분법은 때로는 무력하며, 인간은 언제든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또한 이 작품은 문장력에서도 뛰어나다. 서늘하면서도 섬세한 묘사,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들. 정유정은 무겁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강력한 서사와 탄탄한 구성력으로 풀어내며, 결코 독자를 방치하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독자는 어떤 결론도 쉽게 내릴 수 없다.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를 단정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감정의 잔물결은 소설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남는다.

      『7년의 밤』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그 밤 이후, 어떻게 살아갔을 것인가?”
      이 질문은 아주 조용하지만, 독자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든다. 그리고 그것이 정유정 문학의 진짜 힘이다. 독자가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