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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김언수 『설계자들』 📘 1️⃣ 도서 소개
『설계자들』은 살인을 ‘설계’하는 사람들, 즉 청부살인을 치밀하게 기획하는 ‘설계자’들의 세계를 다룬 하드보일드 장편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캐비닛』으로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였던 김언수 작가가 201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으로,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 존재와 삶의 본질에 대해 묻는 문학적 깊이를 지닌 작품입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주인공 려원이 있습니다. 그는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킬러가 아니라, 살인을 '기획'하고 실행을 조율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일은 표적의 일상을 조사하고, 가장 티 나지 않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설계하는 일. 마치 건축가처럼, 그는 죽음을 디자인합니다. 이런 설정은 기존의 액션 중심 범죄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접근입니다. 이 소설은 총성이 울리고 쫓고 쫓기는 장면보다, 내부의 균열과 심리적 전율을 다룹니다.
김언수는 이 세계를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그려냅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고, 감정은 배제되며, 인간은 기능으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적인 감정은 피어오릅니다. 주인공 려원은 그 차가운 체계 속에서 점점 자신의 인간성과 감정에 눈뜨기 시작하며, 그것이 소설의 중심 서사로 자리 잡습니다.
『설계자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르 공쿠르 드 리에주’라는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양에서 온 누아르 문학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독일, 일본 등으로 판권이 수출되었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영상화 제안도 줄을 이었습니다.
저자 김언수는 1973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6년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캐비닛』으로 데뷔했고, 이후 『설계자들』을 통해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사회의 이면을 특유의 냉소적이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내며, 한국 하드보일드 장르를 새로운 지평으로 이끈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죽음을 설계하는 이들이 사는 세계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설계자들』은 단순한 범죄소설이 아닙니다. ‘살인을 설계한다’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미 세계관의 농도가 짙어지는 이 소설은, 작가 김언수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문학적 질문에 스릴러의 언어로 대답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설 속에서 죽음을 다루는 인물들을 살인자 혹은 피해자로 한정하지만, 『설계자들』은 이 둘의 사이를 잇는 제3의 존재인 ‘설계자’에 주목합니다. 이들은 총을 쥐고 방아쇠를 당기는 일보다, 죽음을 ‘기획’하고 ‘조율’하고 ‘연출’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마치 연극의 연출자처럼, 주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을 무대 위에서 퇴장시키는 역할을 맡습니다.
주인공 려원은 그런 설계자 중 하나입니다. 그의 손에 피가 묻지는 않지만, 그의 설계 없이는 살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계획을 짜고, 타깃의 일상에 침투하며, 그 죽음을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차가운 기계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일에 대한 감각, 죄의식, 외로움, 인간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입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이 모순된 감정 구조입니다. ‘살인을 기획하는 인간’이라는 설정이 주는 강력한 반전 속에, 작가는 감정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는 한 인간의 고독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냉혈한의 이미지와는 다른, 불안하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설계자들이 이 소설의 핵심 인물입니다.
김언수는 이러한 이야기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문장과 구성으로 풀어냅니다.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고,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감정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때론 냉소적이고 때론 서정적인 이 문장은, 독자에게 “이건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하듯,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소설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다루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워내기 위해 누군가의 감정과 윤리가 어떻게 해체되고, 다시 회복되는지를 그려냅니다. 『설계자들』은 “죽음의 이면”이 아니라, “죽음 뒤에 남은 자들의 무게”를 조명합니다. ‘죽이는 자의 죄’에만 머물지 않고, 죽음을 실행하는 조직, 그것을 묵인하는 사회,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무뎌진 인간까지 통틀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편 이 책은 국내 출간 이후, 프랑스,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며 김언수 작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누아르의 정수를 계승한 한국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2012년에는 프랑스 미스터리문학상 ‘르 공쿠르 드 리에주’ 수상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형식, 철저한 심리 묘사, 한국 사회의 조직적인 폭력과 시스템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감정을 잃지 않으려는 개인의 발버둥. 이 모든 것이 『설계자들』의 서사 구조 속에서 꽤나 탄탄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그저 '범죄소설'이라는 말로 끝내기엔 아까운, 정말이지 치밀하고 감각적인 문학이에요.
📖 2️⃣ 줄거리
이야기의 시작은 평온합니다. 설계자 려원은 또 하나의 ‘의뢰’를 받고 평소처럼 살인을 준비합니다. 익숙한 일, 익숙한 루틴. 표적의 일상을 추적하고, 치밀하게 죽음을 설계합니다. 그 과정은 마치 예술에 가깝고, 철저하게 무미건조합니다. 그는 살인을 감정 없이 실행하지만, 어느 순간 무언가 달라집니다.
이번 의뢰는 평소와 다릅니다.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고,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려원은 그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기억과 감정, 억눌러 두었던 죄책감에 휘말립니다. 그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음을, 자신도 ‘느끼는 인간’이었음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여러 명의 설계자가 등장합니다. 려원의 상관인 최국장, 냉혹한 관리자 하상무, 현장을 책임지는 이반. 이들은 모두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하는 조직의 톱니바퀴입니다. 하지만 이 조직 역시 완전하지 않으며, 내부에는 균열이 존재합니다. 그 균열이 점점 벌어지며, 조직은 흔들리고,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려원은 위기에 처한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설계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한 설계를 준비합니다.
소설은 후반으로 갈수록 속도감이 붙지만, 결코 단순한 액션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려원이 마주하는 내면의 갈등, 조직의 붕괴, 그리고 '살인'이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려원의 과거, 그가 죽인 사람들의 흔적,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죽는 자보다, 죽이는 자가 더 고통받을 수도 있다’는 역설을 느끼게 합니다.
『설계자들』은 단순한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곧 복잡하고 치밀한 인간 심리와 조직의 해부학으로 확장되는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려원. 그는 흔한 ‘킬러’가 아니다. 그의 직업은 사람을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설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청부살인을 위한 ‘플래너’, 아니, ‘디자이너’에 가깝다.
그는 총을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도면 위에서 사람은 죽는다. 려원의 하루는 표적의 습관을 관찰하는 일로 시작된다. 그가 매일 어떤 골목을 지나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술을 즐기고, 어떤 방식으로 혼자 있는지를 꿰뚫는다. 이 정보들은 살인을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한 핵심 재료다. 려원은 치밀하게 사고사처럼 보이는 장면을 만들고, 누군가의 인생을 아무 흔적 없이 지워낸다. 그의 살인은 시끄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섬뜩하다.
이 조직은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다. 그들은 살인을 ‘관리’한다. 청소부가 있고, 서류를 정리하는 이가 있으며, 조직 내의 내부 권력을 조율하는 인물도 존재한다. 그야말로 하나의 완전한 시스템.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설계자들’이 있다.
하지만 소설의 진짜 긴장감은 ‘시스템의 고장’에서 출발한다. 려원이 어느 날 받은 의뢰는 여느 때처럼 평범하다. 죽여야 할 대상도 특별하지 않다.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행의 순간, 의뢰는 어긋난다. 타깃이 죽지 않는다. 그보다 예상치 못한 인물이 죽는다. 그리고 그 사고의 뒤에는 조직 내부의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
려원은 이 사건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역설계’였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판에 스스로가 갇힌 셈이 된 것이다. 표적을 지워야 할 입장이던 그가, 조직 내에서 감시당하고, 쫓기고, 위협받기 시작한다. 그의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토록 억눌러온 감정들이 틈입해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소설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단순한 청부살인의 전개에서 벗어나, 려원이라는 인물의 정체성 해체와 존재의 불안을 따라가는 서사로 전환된다.
려원은 이제 더 이상 차가운 기계가 아니다. 그는 죄책감, 슬픔, 두려움이라는 낯설고 오래된 감정에 휘말린다. 과거 자신이 설계한 죽음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는 더 이상 설계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완벽하던 설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도망자가 된다. 죽음의 판 위에 누군가를 배치하는 자가 아니라, 죽음의 판 위에 올라선 존재로 바뀐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삶을 자각하게 만든다. 려원은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우기 위한 설계에 맞서, 역설계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 관계도 복잡하고 묵직하다. 하상무는 냉혹한 관리자다. 그는 조직의 명령을 절대시하며,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인간은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라는 그의 철학은 려원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또 하나의 축인 최국장은 려원을 어릴 때부터 키워온 인물이다. 려원에게 아버지 같았던 존재이지만, 그 역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기능하면서, 감정과 효율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인물이다. 그리고 이반. 현장을 정리하는 그는 려원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불안한 관계를 유지한다. 친구인가, 감시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설계자인가?
이 모든 인물들은 하나의 중심점에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데, 그 중심에 바로 ‘려원의 인간성’이라는 키워드가 자리잡는다. 그는 점점 이 조직의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다운 감정에 가까워진다. 외로움, 후회, 그리움, 살고 싶다는 충동. 살인을 설계하는 자가, ‘삶을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설 후반, 려원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억누를 수 없게 된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기보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을 지우기 위한 시스템 전체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죽음을 부를지라도,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톱니바퀴로만 남기를 거부한다.
결국, 『설계자들』은 누군가의 삶을 ‘끝내는 자’의 이야기에서, 누군가의 삶을 ‘시작하고 싶은 자’의 이야기로 변모한다. 려원이 도달하는 결말은 단순한 생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선언이다. 시스템은 그를 제거하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아 기억하고, 고통받으며, 느끼고, 설계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한 가지 의문과 마주한다.
“우리 삶의 설계자는 누구인가?”
“나는 내 삶을 설계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설계 속을 살아가고 있는가?”『설계자들』은 바로 그 질문을 품은, 지독히 고독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 3️⃣ 평가
『설계자들』은 단순히 ‘범죄 소설’이라는 틀로 설명하기엔 아쉬운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살인을 설계하는 자도 인간인가’, ‘살인을 반복하며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인물입니다. 특히 주인공 려원은 매우 입체적입니다. 그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인물이지만, 속으로는 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갑니다. 살인을 ‘직업’으로 삼는 그의 태도는 혐오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이해되고, 때로는 연민까지 자아냅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은 독자가 그를 단순히 ‘살인자’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김언수 작가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울림이 있습니다. 말이 많지 않은 인물들이 많은데도, 장면 하나하나에 긴장감이 흐르고, 여백 속의 의미가 풍성합니다. 묘사는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사는 짧지만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스토리의 구성도 탄탄합니다. 초반에는 다소 정적인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중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긴장감을 높이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직진합니다. 큰 반전보다는 인물의 감정 변화와 상황의 미세한 균열들이 이야기를 이끕니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면도 있습니다.
물론 일부 독자에게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 감정의 절제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빠르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 ‘깊게 남는 책’입니다. 한 문장, 한 장면을 곱씹을수록 보이는 층위가 달라지고,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독서가 진행됩니다.
『설계자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무게에 대해 말합니다. 살인을 설계하는 자조차, 결국은 삶의 설계자이며, 그 누구도 자신이 설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점. 그 메시지는 지금 우리의 삶에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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