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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Pachinko)』 도서 소개
한 여성의 삶이 일본 땅에 뿌리내리며 겪은 고난과 희망, 그리고 4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린 대서사시. *『파친코(Pachinko)』*는 2017년 출간 이후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킨 소설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Min Jin Lee)**의 대표작입니다.
작가는 직접 일본에서 재일조선인들과 인터뷰하고, 오랜 시간 자료를 조사한 끝에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차별, 정체성, 소속감, 가족, 생존의 윤리 등 인류 보편적인 주제를 끈질기게 파고듭니다.
『파친코』는 제목 그대로 ‘파친코’라는 일본의 도박 기계를 상징으로 가져오는데요. 주인공들의 삶이 마치 쇠구슬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운명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강렬한 은유로 표현됩니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그려낸 삶의 굴곡은 더더욱 깊은 울림을 전하죠.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애플TV 드라마화 등 다방면으로 주목받으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품입니다.줄거리
『파친코』는 191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의 부산 영도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고, 그 속에서 가난한 하숙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딸 선자를 낳습니다. 병약한 아버지와 억척스러운 어머니 밑에서 자란 선자는 작고 보잘것없는 섬에서 자라지만, 품위와 순수함을 잃지 않은 소녀로 성장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자는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 상인 고한수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고한수는 젠틀하고 자상하며 부유한 인물로, 선자는 그의 존재를 통해 세상의 넓음을 처음으로 체험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선자가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된 후, 고한수는 자신이 유부남이며 일본에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죠. 그는 선자에게 후처로 일본에 데려가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선자는 그 제안을 거부합니다. 비록 세상은 그녀에게 손가락질하겠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자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 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젊은 목사 백이삭입니다. 병든 몸으로 조선에 머물고 있던 그는 선자의 사정을 알게 된 뒤, 그녀의 결백함과 당당함에 감동하여 결혼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선자는 백이삭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 소설의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됩니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끊임없는 차별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백이삭은 전도와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려 애쓰지만, 그의 병약한 몸은 결국 그를 감옥으로 이끌고, 끝내 세상을 떠나게 합니다. 선자는 혼자가 된 채 시댁 식구들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후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가 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한 결로 흘러갑니다. 노아는 지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학생이 되지만,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고한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큰 충격에 빠집니다. 그는 조용히 가출해 일본인으로 신분을 바꾸고 살아가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싸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반면 동생 모자수는 전혀 다른 길을 걷습니다. 현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의 그는 파친코 산업에 뛰어들며 점차 부와 권력을 쌓아갑니다. 모자수는 차별과 멸시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파친코를 택합니다. 그는 "더러운 돈"이라 비난받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 나갑니다.
세월이 흘러 손자 세대로 이어진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조선인’이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기업에 취직해도 국적 하나로 인해 벽에 부딪히고, 뿌리를 지우고 싶은 유혹과 싸우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선자의 후손들은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배워나가죠.
이야기의 말미, 늙은 선자는 파친코 가게에서 일하는 며느리, 손자와 함께 조용히 살아갑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수많은 비극과 고통, 희망과 회복이 얽힌 거대한 퍼즐이었고, 그녀는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살아냈습니다.평가
『파친코』를 읽는다는 건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세기의 한국인 이민 역사를 통째로 체험하는 일입니다. 이민진 작가는 감정의 낭비 없이도,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독자를 뒤흔듭니다.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감정의 절제와 관찰자의 시선입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차갑다’고 표현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 절제가 이민진 작가의 진정성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어줍니다. 선자의 인생은 파란만장하고, 그 자식들과 손자들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눈물겹지만, 작가는 절대 독자의 감정에 구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파친코’라는 장치의 상징성도 빼놓을 수 없죠. 파친코 구슬처럼 인생은 불공평하고, 방향은 알 수 없으며, 노력과는 무관하게 결과가 결정되는 잔인함.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선자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가족을 위해 싸우며, 결국 ‘존엄’을 잃지 않습니다.
읽는 내내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나는 지금 어떤 정체성을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특히 해외에 살아본 경험이 있거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에게 이 책은 너무나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다만, 서사가 워낙 길고, 인물이 많아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겐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중반 이후 약간의 전개 속도 저하가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인물들의 입체감과 감정의 깊이를 쌓아 올리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소설은 마치 오래된 가족 앨범을 들춰보는 것처럼, 읽고 난 뒤에도 가슴 한켠에 잔잔하게 남아 있는 여운이 있습니다.'도서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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